La Vie En Rose 여행

프랑스 코르시카 여행 3일차 – 산타줄리아 / 보니파시오 / 쁘띠 스페로네

어김없이 일찍일어나서 아침식사를 하고 (평소엔 아침 챙겨먹지도 않는데, 여행할때만큼은 조식 꼬박꼬박 먹는 기적이 일어난다) 바로 향한곳은 산타 줄리아 해변 (Plage Santa Giulia).

그렇다. 또 갔다. 전날 투명한 바닷물에 발 한번 못 담근게 한이 되서, 하늘하늘한 여름 원피스 안에는 비키니를 챙겨입고, 프로프리아노(propriano)에서 산 쪼리와 챙 넓은 모자를 들고 비장한 마음으로 호텔을 나섰다.

산타줄리아 해변 (Plage Santa Giulia) – 또갔다.

다행히도 날씨가 전날보다 더 좋았다. 온도는 23-24도를 맴돌았지만, 바람은 선선하고 해는 쨍쨍인 덕에 해변가에 누워 뒹굴대기 정말 딱 좋은 날씨였다.

전날 찍지 못한 “여름휴가샷”도 잔뜩 찍었다.

해변에 도착하자마자 수건 두 장 깔고 옷부터 벗어 제꼈다. 이러려고 안에 비키니를 입고왔지..

아침에 분명히 챙긴줄 알았던 선크림이 없어서 아주 잠깐 멘붕했지만, 오전에 햇빛이 그렇게 강하지 않을때만 해변에 있기로 하고 그냥 선크림 없이 수건 위에 누웠다. (피부야 미안해)

전날처럼 23도 정도 되는 날씨였지만, 바람이 불지않아 비키니만 입고도 오히려 덥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햇볕에 피부가 달구어지는게 느껴질때 쯤, 슬슬 바다에 들어가볼까 하고 발을 살짝 담궜는데, 물이 너무 차가운게 아닌가!!!

여기까지 들어가는데 한참 걸렸다.

수심이 얕은 덕에 어린 아이들도 수영하고 노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나도 한참을 걸어서야 허리부근까지 물이 닿았고, 완전 몸을 푹 담그려면 한참을 걸어가야 하기에 그냥 땅을 짚고 헤엄치다가 모래바닥에 앉아서 저 멀리 수상스키를 타는 사람들의 모습을 구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물 속에 앉아서 눈감고 쉬다가, 다시 해변으로 돌아와서 햇볕 쬐다가, 또 물에서 놀다가를 계속 반복했다.

아, 여기가 지상 낙원이구나 싶었다. 스트레스 한 점 없는 지상낙원.

사실 나는 직장생활을 하면서, 여태까지 단 한번도 맘 놓고 휴가를 간 적이 없었다. 한국으로 휴가 가는데도 회사 노트북을 들고가고, 메일도 봤을 정도니. (내 업무를 처리해줄 사람이 없었다.) 하지만 올해 초 업무를 도와줄 인턴도 뽑았고, 어느정도 마음이 놓여서 노트북이고 핸드폰이고 아무것도 안들고 여행을 온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인턴에게 내 개인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긴 했지만, “신혼여행”이라는 명목 덕에, 나에게 메세지를 단 하나도 보내지 않았다. 인턴에게 미안하고 고마우면서도, 그래 나도 한번쯤 이런 휴가를 보내보나 싶어서 더 신나게 즐겼다.

절벽위에 세워진 도시, 보니파시오 (Bonifacio)

보니파시오는 코르시카 남부에 위치하고, 하얀 석회암 절벽 꼭대기에 만든 요새도시이다. 9세기부터 지어진 역사깊은 요새 안은 좁은거리에 돌계단, 상점, 레스토랑 등으로 북적북적했다.

산타줄리아에서 수영하고 놀다가 바로와서, 모래가 잔뜩 낀 발로 신발을 다시 신고싶지 않아 쪼리를 신고 돌아 다녔는데, 금방 후회했다. 어찌나 계단도 많고 가파른지, 신발을 갈아신고 싶었지만 빨리 구경하고 다른 곳으로 갈 예정이었기에 쪼리가 벗겨지지 않도록 발가락에 힘을 퐉 주고 걸어 다녔다.

보니파시오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만큼 아름다웠다. 청록색 바다는 눈부셨으며, 그와 맞닿은 가파른 절벽은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을 벅차오르게 했다. 코르시카에서 겨우 3일을 보냈지만, 내가 코르시카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이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여전히 해변에서 신던 쪼리를 신고 오르락 내리락 포니파씨오를 구경하다가, 이 곳에서 꼭 봐야한다는 Escalier du roi d’Aragon (아라곤 왕의 계단)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우리는 보니파시오에 도착 하자마자 관광안내소에서 지도를 받고, 이 곳에 오면 꼭 구경을 해야한다는 관광 명소의 입장료를 미리 지불한 상태였고, ”아라곤 왕의 계단”이라는 곳은 그중 하나였다.

Escalier du roi d’Aragon (아라곤 왕의 계단)은 보니파시오 에 있는 절벽길로, 바다 해수면부터 꼭대기까지 45도 각도로 이루어져 있는 187개의 계단을 말하는데, 전설에 따르면 1420년, 아라곤 왕의 부대가 딱 하룻밤 만에 맨손으로 파낸 계단이라고 한다. (전설일 뿐이고 실제로는 자연이 만들어낸 구멍이 있었고, 그 곳에 계단을 설치한 것이라고 한다.)

대충 이런 곳이다. (관광 안내 사이트 펌)

여기서 내가 한 가지 놓친 것이 있었다.

이곳은 꽤 가파른 계단이라 노약자나 임산부등에게는 권하지 않는 코스이고, 무엇보다도 운동화와 헬멧은 필수 인데다가 (물론 헬멧은 매표소 앞에서 빌려준다) 쪼리는 금.지.

아. 내가 왜 쪼리를 신고 돌아다녔을까. 후회되는 순간. (관광 안내 사이트 펌)

우리는 표가 있었기에 매표소직원에게 바로 들어가면 되는건지 질문하는데, 너무 당연하게도 내 신발때문에 나는 들어갈 수 없었다. 직원은 안타까워하며 “혹시 내일 다시 올꺼면 내가 표에 적어줄게, 내일 구경하러 와” 라고 했지만, 우리는 다시 보니파씨오에 올 계획이 없었다.

그냥 관둘까도 생각했지만, 여기까지 왔는데 이 관광명소를 보지 않고 돌아간다는건 너무 아쉽지 않은가. 나는 매표소에서 기다릴테니 남편에게 혼자 가서 예쁜 사진을 찍어오라고 미션을 주었다. (우린 사진찍는데 꽤나 진지해서, 남편의 아이폰 X는 내가 가지고 있고, 남편에게 내 아이폰 11Pro를 주면서 꼭 사진 잘 찍어오라고 몇번이고 당부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인터넷 서핑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남편이 헉헉거리면서 돌아왔고, 오자마자 물부터 찾아댔다. 빨리 미션 수행하고 돌아오기 위해 가파른 187개의 계단을 성큼성큼 쉬지않고 내려갔다가 올라왔다고.

미션, 성공적

미션을 성공적으로 마친 남편은 이미 모든 힘이 다 빠진 상태였고, 더 이상 보니파시오에서 무언가를 할 의지를 잃었다. 우리는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인 쁘띠 스페로네 / 쁘띠 스페론 (Plage du Petit Spérone)으로 향했다

숨겨진 해변, 쁘띠 스페로네 (Plage du Petit Spérone)

보니파시오 에서 동남쪽으로 약 5km 떨어진 쁘띠 스페로네 (쁘띠스페론) 해변은 코르시카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중 하나로 꼽히는데, 그 이유중 하나는 “가기 힘들다” 라는데 있지 않을까 싶다. 코르시카에 있는 다른 해변들과 달리, 주차장부터 약 20분은 걸어야 이 해변을 볼 수 있는데, 가는길이 나름 험하기 때문에 꼭 운동화를 신어야 한다. 산넘고 바다건너 가는 험한길은 아니지만, 바위 넘고 물건너 가는건 맞다. 다행히 가는 길이 험하다는 점은 인터넷에서 미리 파악했기에 바로 운동화로 갈아신었다. (보니파시오 가기 전에도 미리 알아 봤어야 했는데…)

모래사장을 넘고 바위를 넘고 수풀을 지나 이 곳에 도착했다. 숨겨진 해변, 쁘띠 스페론.

쁘띠 스페로네가 눈 앞에 펼쳐졌을때 든 생각은 “보물을 찾았다” 였다. 20분이나 험한 길을 걷고 걸어서야 나오는 이 작은 해변은, 보물을 찾았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달까? 보물을 찾아본 적은 없지만말이다.

아이폰 와이드 앵글로 대충 다 들어갈 정도의 작은 해변.

이제 슬슬 해도 지고 있었기에, 난 저 차가운 물 속에 들어갈 생각이 없었고, 그냥 해변에 앉아서 쉬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가지 생각이 들었다.

쁘띠 스페론은 사람들이 많이 찾는 관광 명소인데도 불구하고 가기 쉬운 길을 안 만들어놨다. 이곳 뿐만이 아니라, 코르시카는 건물이나 집을 짓는등 자연광경을 해칠 수 있는 모든 행위에 대한 규제가 많다. 한국이랑 프랑스를 비교하는것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제주도에는 매일같이 “뷰맛집 까페”나 호텔, 빌딩 아파트 등이 우후죽순으로 늘어나는데. 우리도 이렇게 자연 광경을 지킬 수 있는 날이 오긴 할까, 싶었다

코르시카의 브르통 요리사

저녁식사는 호텔의 또 다른 식당, La Verrière 로 예약을 미리 해놓았었다. 문제는, 우리가 보니파시오에서 점심을 너무 늦게먹어 배가 고프지 않았다는 것…..

몇년 전, 남편과 프랑스 여행 테마를 정했었다. 그 것은 바로,

Tour de France gastronomique (프랑스 미식 여행)

탑셰프 애청가인 남편은 맛있는 요리를 좋아한다. 아니, 사랑한다. 어디든 여행을 갈 때마다 “현지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식당을 찾는데, 몇년 전부터 우리의 여행 테마는 프랑스 미식 여행으로, 각 지역을 여행 할 때마다, 그 지역의 맛을 살린 요리를 하는 식당에 들러 식사를 한다. 기준은 미슐랭 가이드.

이미 여행을 오기 전부터 여러 식당을 물색 해보았으나, 여행 오기 하루 이틀 전에 급히 식당을 찾자니 자리가 없었다. (또한, 코르시카에는 비수기에 문을 닫는 식당도 많다.) 계획된 여행은 아니지만, 기껏해서 코르시카까지 왔는데 코르시카 정통 음식도 먹지 못하다니… (사실 여태까지 코르시카 정통식당에서만 밥을 먹긴 했다. 맷돼지, 흑돼지, 해산물 등… 하지만 우리 컨셉은 그게 아니라고!)

그래도 맛있는 음식은 먹어야지 싶어서 찾아보는데, 마침 우리가 묵고있는 호텔의 식당중 하나가 MOF (Meilleur Ouvrier de France, 프랑스 정부가 인정하는 국가 공인 명장으로, 요리, 제과, 꽃 등 여러 분야에 존재한다)가 운영하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결국 이 곳으로 정했다.

하지만 알고보니 이 국가 공인 명장 셰프는 코르시카 사람이 아닌 프랑스 서쪽 브르타뉴(Bretagne) 지방 사람, 브르통 (Breton)이었다. 어쩐지, 바닷가재 요리를 내세우더라니. (랍스터는 코르스의 특색있는 요리는 아니다.) 하지만 우린 랍스터를 너무 좋아하니까, 우리의 컨셉은 이번만 포기하고 랍스터를 주제로 한 코스요리를 먹기로 했다.

코르시카의 전형적인 대표 음식은 아닐지언정, 랍스터를 먹는데 불만이 있을리가. 맛있었다.

다음에 또 온다면 다시 와서 먹고 싶은가? 그건 아니다. 우리는 컨셉을 지켜야하니까. 다음에는 꼭 정통 코르시칸 미슐랭 스타 식당에서 식사를 할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