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 Vie En Rose Paris Joomin 여행 일상

프랑스 코르시카 여행 6일차 – 마지막날 (부제, 결혼에 대한 사색)

원래대로라면 마지막날 아작시오를 들러야 했지만, 이미 전날 아작시오 구경을 한 덕에 굳이 마음 급해할 필요는 없었다.

파리행 비행기는 오후 3시로 시간은 많았지만, 전날 비가 온터라 코르시카의 위험한 산길을 급히 운전해서 공항까지 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에 오전 11시, 호텔 체크아웃 시간에 맞춰 아작시오(ajaccio)로 향하기로 했다.

위험한 코르시카 도로

호텔 프론트에는 첫날 우리에게 도움을 많이 주었던 친절한 여자 직원이 있었고, 우리의 이름을 부르고는 (물론 남편의 성만 불렀다.) 체크아웃 절차를 밟으며 스몰톡을 시작했다.

“바로 파리로 가시나요? 마지막 일정은 뭐예요?”

“네 파리로 돌아가요, 비행기 출발 시간은 한참 남았는데, 어제 비도 왔고 오늘 날씨도 흐리고, 위험한 산길 운전하니 미리 일찍 출발하려고요.”

“위험한 산길이요?” 직원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듯이 말했다.

참고로 코르시카는 산지가 대부분인지라, 차도도 산 위에 만들어진 경우가 많다. 그 말은 즉슨, 구불구불 급커브길도 많고, 아직 잘 닦이지 않은 미포장 도로도 많다는 뜻.

남편은 파리촌놈, 나 또한 운전 경력이라고는 잘 닦인 파리주변이 전부. 이런 파리 촌놈들에게 코르시카 도로는 너무 위험했다. 실제로 코르시카섬 여행을 하는 내내 우리는 속도 제한보다 살짝 느리게 운전했고, 답답했던 현지인들은 우리를 추월하기 일쑤였다. (아니 급커브길에서 어떻게 추월을하지?) 아마 호텔 직원은 우리를 추월하던 수많은 현지인들중 하나였으리라.

파리촌놈들인 우리에겐 너무나도 위험했던 길.

아작시오 근처 해변

이미 전날 아작시오 시내 구경을 했기 때문에 굳이 시내까지 갈 필요는 없었고, 렌트카 반납 전에 기름만 채워넣기 위해 잠깐 들른다음 바로 아작시오 공항으로 향했다.

거의 공항에 도착했을때쯤, 사람들이 바다 사진을 찍고 있는 모습이 보여 우리도 근처 주차를 하고 무슨 일인지 보러 갔다.

말 그대로 지중해 (地中海), 대륙과 대륙 사이에 낀 바다라 그런지 잔잔하기가 호수같다는 지중해에 큰 파도가 치고 있어었다. 다들 넋을 놓고 구경하는데 내가 그걸 놓칠수는 없지, 하며 바로 앞까지 가서 영상을 잔뜩 찍었고, 그 결과는 양말까지 푹 젖은 두 발. 어쩐지 파도가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사람이 없더라니….

파도 멋있다고 바로 앞에서 구경한 파리촌놈들의 최후

파리로 향하는 비행기

파리행 비행기에서 옆자리 코르시카 아주머니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19살에 파리에 일하러 올라오시고, 1988년 8월 13일에 전형적인 파리지앵 남편과 결혼하겼고, 32년째 남편이 매달 13일에 꽃 한송이를 선물하신다는… (어느나라나 아주머니들 친화력은 대단하다. 한시간 남짓한 비행에 이 아주머니의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승무원이 우리에게 뭘 마실지 물어보는데, 남편이 평소처럼 나를 “마드모아젤”이라고 부르자 이 코르시카 아주머니는 바로 “이젠 마담이라고 불러야지!” 하면서 남편을 고쳐줬다. 덕분에 의도치않게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우리가 갓 결혼한 따끈따끈한 신혼부부임을 알리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나 지났을까, 우리의 이름을 물어보는 승무원.

내 이름과 남편의 이름을 말하자, 웃으며 “에어프랑스 증명서”를 건넸다.

우리 둘의 이름과 함께, 우리 신혼여행에 함께해서 영광이라는 글, 그리고 캡틴의 싸인.

결혼, 그에대한 로망

나는 사실 결혼에대한 로망이 없었다. 만난지 오래된 사이에 결혼은 그저 계약일뿐, 결혼하지 않고도 생복하게 사는 커플을 많이 봤기 때문이다.

남편의 사촌형은 결혼을 하지 않았지만, 여자친구, 열 살, 다섯 살된 아이 둘 그리고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 행복하게 직접 공사한 집에서 살고있다. (여자친구는 포르투갈계인데, 실제인지는 모르겠지만 포르투갈 사람들은 집을 직접 짓거나 이런저런 목공일을 잘 하기로 유명하다. 지금 살고 있는 단독주택 또한 시공부터 공사까지 몇년을 공들여서 만든 애정이 담긴 집.)

한번 사촌형 커플 집에서 가족 행사가 있어 들른적이 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너희는 팍스 (PACSㅡ Pacte Civile de Solidarité 시민연대조약 이라는 뜻으로, 흔히 프랑스 동거계약 이라고 부른다)했어?” 라고 별 생각 없이 물었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팍스는 안했지만, 우린 가족이야.”

이때부터 였던듯 하다, 과연 결혼이 필요한 것인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기 시작한게. 그리고 나는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생겼다.

결혼은 그저 계약의 일부일뿐, 계약이 없어도 가족이 될 수 있다. 계약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난 결혼을 하긴 하지만, 결혼을 하든 말든 내 인생에선 달라질게 없었고, 실제로도 그렇다. 나에게 있어서 결혼이란 그저 종이 서류일 뿐이고, 이 서류가 있든 없든 나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하지만 나의 이런 삭막한(?) 시선과는 별개로, 너무나 감사하게도 정말 많은 축하를 받았다. 옆자리 우연히 앉은 코르시카 아주머니도, 우연히 우리의 결혼 소식을 알게 된 승무원도 우리의 축복을 빌어주는데, 아무리 결혼에 대한 로망이 없었던 나라지만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 계기가 되었달까.

수다스러운 코르시카 아주머니와 에어프랑스 덕분에 좋은 추억이 생겼다.

이렇게, 나의 첫 코르시카 여행은 끝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