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절 시즌은 프랑스는 물론 서양 전반 곳곳에서 초콜릿을 볼 수 있다. 남편과 매년 부활절마다 맛있는 초콜릿을 먹으러 다니는데, 올해는 딱히 미리 사두지 않고 천천히 걸어서 고급 초콜릿 브랜드인 알랭 뒤카스 Alain Ducasse 와 피에르 마르콜리니 Pierre Marcolini 패트릭 로저 Patrick Roger 등이 있는 오데옹 Odéon으로 향했다.
가장 먼저 들른곳은 알랭 뒤카스 Alain Ducasse의 매장. 이미 몇년 전 알랭 뒤카스의 부활절 계란 초콜릿을 먹은 적이 있어서, 이왕이면 다른 브랜드를 먹고 싶었으나 그냥 가는 길목에 있길래 올해는 어떨까 구경을 해봤다. 이런 초콜릿 브랜드는 매년 테마가 바뀌는데, 올해의 테마는 바닷가재였다. 부활절에 달걀과 해산물을 먹는 것이 종교적인 문화이긴 한데, 어째 랍스터는 살짝 애매한 기분. 물론 예쁘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우와” 소리가 나올만한 디자인은 아니었기에 그냥 패스.
피에르 마르콜리니 Pierre Marcolini 가 2020년 세계 최고의 파티셰 Meilleur Pâtissier du Monde 자리에 올랐으니, 한번 기념삼아 가볼까도 고민했지만 재작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초콜릿 세트로 잔뜩 먹었던 기억이 있어서 다시한번 패스. 그리고 이왕이면 피에르 마르콜리니는 초콜릿보다는 파티스리 Pâtisserie, 디저트 를 먹어보고 싶었다. 상을 탄 이유가 있겠지, 싶어서.
그렇게 계속 걸어가던 중, 줄이 엄청나게 긴 매장 하나가 보였는데 바로 패트릭 로저 Patrick Roger 의 가게였다. 올해 패트릭 로저의 초콜릿 테마는 병아리와 고슴도치. 꼭 시도해보고 싶었던 쇼콜라티에 였던지라 출발하기 전부터 집에서 인터넷으로 찾아봤었는데, 올해 작품 예시를 보자마자 바로 ” 나 이거 살래!!!!!” 라고 외쳤지만 이미 인터넷에서 살 수 있는 작품들은 전부 다 매진이었다.
길게 늘어져있는 줄을 보아하니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매진일 것 같았지만 일단 줄은 서보기로 했다. 남편이 “근데 이렇게 줄 서서 들어가는데 여기도 매진이면 어떡해?”라고 했지만, 한참을 줄 서서 기다린게 억울하니 “일단 뭐라도 사자….” 라고 들어간 패트릭 로저 매장.
패트릭 로저 (Patrick Roger)
패트릭 로저 (참고로 실제 프랑스어로 발음은 빠트힉 호제 이다) 는 프랑스 유명 쇼콜라티에로, 20년째 초콜렛 관련 국가 공인 명장 자격 MOF – Meilleur Ouvrier de France 이 있는 명장이다. 패트릭 로저는 단순히 맛있는 초콜릿을 만들기 뿐만이 아니라 예술로 승화시키는것으로도 유명한데, 말 그대로 초콜릿을 사용하는 예술가, 라고 볼 수 있겠다. 실제로 패트릭 로저를 칭할때, 단순 쇼콜라티에가 아니라 조각가 겸 쇼콜라티에 sculpteur-chocolatier 로 부른다.
패트릭 로저는 프랑스는 물론 일본에서도 굉장히 유명하다고 하는데, 또다른 디저트 강국인 일본에서 관심을 가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초콜릿 조각가인 패트릭 로저의 매장은 다른 파티셰, 쵸콜라티에에 비하면 인테리어가 굉장히 특이하다. 보통 초콜릿 부티크는 사랑스럽거나, 시크한 매력을 뽐내기 마련이나 패트릭 로저의 부티크는 마치 미술관에 들어온 느낌을 준다. 위의 사진에서 볼 수 있는 오랑우탄,하마 등 다양한 조각상을 만들었으며, 실제로 이런 작품들 때문에 “초콜릿의 로댕 Rodin du chocolat ” 이라고 불리기까지 한다.
패트릭 로저는 단순히 초콜렛을 파는데만 목적이 있는게 아니라, 사회적인 메세지를 전달하려 한다는 점에서도 “예술가” 혹은 “사회운동가”의 면모를 보여준다. 초콜릿으로 북극곰과 빙하를 조각하여 지구 온난화에 대한 환기를 시키거나, 베를린 장벽 붕괴 20주년을 기념하며 베를린 장벽 모형을 만들기도 했다.
패트릭 로저 Patrick Roger 부활절 초콜릿
병아리!!! 를 외치며 매장에 들어갔으나 아니나 다를까 전부 다 매진, 병아리 3마리가 뭉쳐있는 작품 하나만 남아있었다. 아무리 먹는거에 목숨거는 우리라지만, 초콜렛 사는데 150유로는 너무하다 싶어서 고슴도치 한 마리만 집에 모셔왔다. (사실 이것도 가격이 ㅂㄷㅂㄷ이긴 하지만 일년에 한 두번 먹는게 뭘, 인생 별거 없다. 즐기면서 살아야지.)
따뜻한 날씨에 몸이 녹았을까 걱정되서, 집에 도착하자마자 일단 안녕하신지 살짝 살펴만 보고 냉장고에 뒀다.
다음날인 일요일 느지막히 일어나서 대충 아점 (브런치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토속적인 음식이었다!) 때우고, 나는 커피를 준비하는동안 남편은 비장한 마음으로 칼과 고슴도치를 꺼냈다.
커피는 이미 오래전부터 준비되어서 차갑게 식어가는데, 둘다 차마 고슴도치를 어떻게 깨야할지, 깨고싶지 않은 마음과 그래도 먹기는 먹어야지 하는 마음이 계속 엇갈려서 서로 초콜릿 깨라고 한참을 넘겼다. 한참이 지나서 결심한 남편이 칼을 들었고, 칼이 고슴도치의 목을 찌르자 “동영상!! 동영상!!” 하고 간신히 영상 하나 남김. 내 비명 (?)소리가 정말 실감난다.
안은 비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조개모양 초콜릿으로 가득했다. 매장에서 고슴도치 분양받고(?) 나왔을 때 매장 직원분께서 손에 하나씩 쥐어주던 그 초콜릿. 도저히 고슴도치 머리는 먹을 수가 없어서, 그 안의 내용물과 달걀 노른자를 먹었다. (달걀 노른자는 초콜릿이었는데, 그 안에 꿀렁꿀렁한 캐러맬이 있었다)
한두조각씩 먹고 다시 냉장고로 돌아간 고슴도치. 2021년의 부활절도 이렇게 달콤하게 지나간다 ❣️